스윗 포틴 블루스
(사진에서는 토끼옷을 입고 있지만, 난 곧 뒤에 있는 저 텔레토비 옷을 입게 된다.....)

1998년 가을,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더니 100kg에 육박하는 중년 아저씨 둘이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겼다. 1년간 머물 홈스테이 가정의 주인들이었다. “캐나다에 온 것을 환영해! 그런데 넌 참 남자치고 짐이 많구나.” 그들은 홈스테이에 묵고 있는 대여섯의 동양인 어학연수생들을 종종 거실로 불러 모아 “우리 함께 음악을 들어 보아요”라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틀었다. 그걸 따라 부를 수 있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완벽한, 맞춤형 홈스테이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할로윈 밤에 그들이 거실에 펼쳐놓은 코스튬을 보며, 나는 이 귀여운 중년 게이 커플의 취향에 탄식했다. 그들이 준비한 의상은 카우보이, 선원, 비버, 토끼, 마녀 등이었다. 뭣 하나 게이적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그걸 좋아하는 것과 직접 입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안 입을래요.” 그러자 홈스테이 주인들은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침울하게 소파에 앉아 선원 코스튬을 만지작거렸다(아마 그걸 나에게 입히고 싶었으리라). 인형 옷만 구하고 인형은 사지 못한 소녀들 같은 두 남자를 위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남은 걸로 아무거나”라고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스튬은 노란색 텔레토비였다. 밴쿠버 교외 동네의 할로윈은 섹시한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시내의 할로윈과는 달랐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들이 사탕 바구니를 목에 걸고 다녔다. 나는 노란색 텔레토비 옷을 입은 채 홈스테이 주인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집으로 가서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외쳤다. 시체처럼 생기고 시체처럼 말하고 시체처럼 걷는 할머니가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나와 내 볼을 꼬집었다. “아이고. 우리 애기는 몇 짤?” 나는 차마 스물넷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에게 사탕을 주기 위해 거실에서 문까지 5분에 걸쳐 걸어 나온 그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할로윈을 지켜주고 싶었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엠 포틴….” 그 순간 하늘에서 내 마음속 열 살짜리 꼬맹이가 환하게 웃었다. 아이 좋아.

웹진 IZE에 쓴 글
by Damon | 2013/11/18 20:50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kapow.egloos.com/tb/399258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