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미녀학대자
ALLURE에 썼던 글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답은 분명하다. 그는 관음증 환자가 되었거나, 혹은 금발 미녀만 노리는 사이코패스 킬러가 됐을 거다. 사실, 대부분의 존경 받는 예술가들에게는 어딘가 뒤틀린 성적 욕망과 기벽이 있는데, 다행히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 욕망을 발산한다. 그 욕망을 예술로 환원해 내지 못하는 인간들이 결국 찰스 맨슨 같은 놈들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히치콕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히치콕을 관음증 환자나 금발 미녀만 노리는 사이코패스로 묘사하는 게 영 미덥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 생각 해보라. 서스펜스를 다루면서 히치콕이 항상 삽입하는 부차적인 두 가지 키워드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히치콕의 영화를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하고 악마적으로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두 키워드. 바로 관음증과 금발 여자다.
<이창>의 제임스 스튜어트는 왼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상태로, 망원경을 가지고 남의 집 창문을 엿보는 것을 취미로 삼는 남자다. <사이코>의 안소니 퍼킨스는 벽에 몰래 구멍을 뚫어서 자신의 모텔에 숙박한 여자들의 나체를 훔쳐본다. 히치콕의 영화 속에서는 언제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훔쳐보고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히치콕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바로 ‘관음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관음증과 이어지는 히치콕의 영화적 페티시가 바로 금발의 여자다.
그가 굳이 금발을 선호한 이유? 그거야 아주 개인적인 취향이었을 것이다. 만약 히치콕이 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를 좋아했다면 히치콕 영화의 주인공들은 죄다 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였을 거다(이거 농담 아니다.) 다만, 도널드 스파토의 꽤나 편파적인 히치콕 전기 <미모에 홀려 : 알프레드 히치콕과 주연 여배우들>에 따르면 히치콕이 병적일 정도로 금발 미녀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억눌린 성적 욕망 때문이었단다. 체중이 285파운드나 나가는 단신의 히치콕은 자기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을 정말로 열렬히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히치콕이 관에 들어간 지금에야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몇 가지 조금 심상찮은 증거들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이스 켈리와 티히 헤드렌 처럼, 히치콕이 특별히 아꼈던 여배우들과 히치콕의 관계를 뒤돌아 보면 답은 분명해 진다. 히치콕은 <오명>등에 출연한 잉그리드 버그먼이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롯셀리니와 바람이 나 이탈리아로 건너가자 죽을 때까지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고, 다시는 기용하지도 않았다. <이창>,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주연이었던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국왕에게 시집가자 히치콕의 질투는 더욱 불타올랐고, 바로 그 시점부터 그는 영화 속에서 금발 미녀들을 변태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많은 히치콕 전문가들은 <사이코>에서 (또다른 금발) 자넷 리를 식칼로 난자해 죽이는 장면이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개인적 복수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히치콕의 대표작인 <새>와 후기작인 <마니>의 주연이었던 티피 헤드렌이 있다. 헤드렌은 오로지 히치콕이 발굴해 유명해 진 여배우였다. 히치콕은 그녀를 잉그리드 버그먼과 그레이스 켈리의 대체품처럼 사랑했는데, 심지어 풋내기인 헤드렌의 의상과 필적까지 모조리 직접 지도할 정도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티히 헤드렌은 <마니> 이후 어떠한 히치콕 영화에도 출연하지 못했고(히치콕의 사랑 고백을 거절했다는 설이 있다), 그녀의 경력 역시 완전히 사그라 들었다. 이후 그녀의 경력에서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업적은, 멜라니 그리피스를 낳았다는 것뿐이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그의 금발 미녀 집착증과 학대벽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를 단 한편만 꼽으라면 <현기증>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킴 노박이 연기하는 연인의 머리 색이나 옷에 무시무시한 페티시즘을 갖고 있는 남자인데, 그녀가 죽고 그녀와 똑 닮은 갈색머리 여자가 나타나자 죽은 애인의 금발과 옷차림을 도착적으로 강요한다. 이쯤 되면 분명하지 않은가. <현기증>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남자의 성적인 페티시즘과 강박증을 모조리 투영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히치콕의 금발 미녀에 대한 집착적으로 뒤틀린 애정은 지금 와서 돌아봐도 끝내 주게 아름답다. 금발 미녀 캐릭터들이 생생한 인간이 아니라 케익의 가장 중간에 꽃아넣는 장식품에 가까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히치콕 영화의 스틸들을 보면 그건 지나칠 정도로 분명해 진다.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이스 켈리, 킴 노박과 티피 헤드렌은 언제나 완벽한 금발을 하고, 언제나 갑갑할 정도로 완벽한 옷을 입고 공허한 표정으로 서 있거나 누워 있다. 혹은 죽어 가고 있다. 특히 전설적인 커스튬 디자이너 이디스 헤드(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의 모델이 됐던!)가 <현기증>의 킴 노박을 위해 디자인한 그 불멸의 회색 정장과 초록색 니트와 검은 드레스를 떠올려 보라. 그 옷은 마치 금발의 킴 노박을 결박하기 위해 만든 바비 인형용 의상처럼 아름답다. 분명 히치콕은 그 의상의 디테일 한 부분까지 이디스 헤드에게 주문했을 것이다. “더 몸을 옥죄게! 더 킴 노박의 금발이 두드러지게! 더 킴 노박의 가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이렇게 외치는 히치콕의 모습이 떠오를 법도 하다.
우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모든 작품들 속에 새겨 넣은 금발 미녀들의 미학을 시체애호증적인 사랑으로부터 분출하는 극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응큼한 변태 영감의 새디스틱한 취향이라고? 맞다. 히치콕은 금발의 목을 조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종류의 뒤틀린 예술가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가장 극단적인 아름다움에는 가장 치명적인 가학성이 숨어 있게 마련 아니던가.
by Damon | 2013/11/18 21:16 | 영화 | 트랙백 | 덧글(2)
이안 매큐언과 맥그리거의 <입체기하학>
이언 매큐언 원작의 TV영화 <입체기하학>

영국작가 이언 매큐언(혹은 이안 맥완)의 글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현대인이라는 동물들의 끝없는 강박과 광기에 대한 조롱 섞인 통찰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의 신드롬>을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인 조는 교외 벌판에서 우연히 제드 패리라는 청년을 만난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당신의 눈빛에서 사랑을 발견했다”며 조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치명적인 애착이 불러일으킨 동성애적 광증? 어림도 없다. 제드 패리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을 위한 집착이다. 제드는 자동 응답기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남기고, 조를 미행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살인을 청부하기까지 한다. 이언 매큐언은 결국 집착이라는 인간의 뒤틀린 본성이 거의 종교적인 광신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산하게 말한다.

이언 매큐언은 괴물 같은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 개개인의 인간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공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다른 대표작 <시멘트 정원>의 주인공은 부모가 죽은 뒤 시멘트 정원이 있는 저택에 남겨진 네 명의 남매들이다.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 이 아이들은 근친상간적 욕망과 동물적인 야심으로 창조된 끔찍하도록 슬픈 피조물들이다. <암스테르담>은 또 어떻고. 맥큐언은 주인공 중 한 명의 변태적인 포르노 사진을 중심으로 무너지는 남자 친구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휘몰아간다. 남자라는 동물들의 썩어빠진 질투와 경쟁을 낄낄거리는 듯한 어투로 조롱해대는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이언 매큐언의 악몽 같은 세계를 여러 번 거닌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이 거대한 스크린에 투영되는 날을 꽤나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작품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노라면 독자들의 영화적 욕망이 갑자기 현실화되는 사건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터. 맥큐언의 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들 만한 용기를 가진 감독이라면 폴 버호벤 정도가 유일하지만 이 도발적인 네덜란드 영감은 할리우드에서 쫓겨나 고향 유배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다. 하지만 맥큐언 팬들의 애석함을 달래줄 괴작이 하나 존재한다. 이완 맥그리거와 그의 삼촌인 다니엘 로슨 감독이 2002년에 제작하고 ‘채널4’를 통해 방영한 30분짜리 단편영화 <입체기하학(Solid Geometry)>이 바로 그 유일무이한 괴작이다.

단편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First Love Last Rites)>의 한 작품을 영화화한 <입체기하학>은 TV에서 방영된 것이 놀라울 정도로 기묘한 예술품이다. 필(이완 맥그리거)과 메이지(루스 밀러)는 스코틀랜드의 도시 에딘버러에 사는 커플이다. 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새롭게 편집하는 것을 조건으로 유산 2만5,000파운드를 상속받을 수 있다는 편지를 받는다. 증조할아버지의 일기에는 다른 차원으로 통할 수 있는 불가해한 기하학 도형의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기장을 편집하던 필은 거의 광적으로 기하학 도형을 완성하는 데 집착하기 시작하고, 설명할 수 없는 집착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마저 갈가리 찢어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를 이용해 연꽃 모양의 기하학 도형을 완성시킨 필은 그것을 아내인 메이지에게 실험해본다. 실험은 성공했는가? <입체기하학>은 아무런 해답도 없다. 시청자들은 <환상특급>의 잘 만들어진 단편이 남길 만한 스산하고 괴이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브라운관 밖으로 내던져질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이언 매큐언이 원했음직한 반응이 아닐까. 미묘함을 더욱 돋우는 것은 광기에 싸인 젊은 여피 역을 (옷도 훌렁훌렁 벗어던지며) 세상에서 가장 잘해낼 유일한 배우인 이완 맥그리거의 섬세한 연기다. 30분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그의 매력은 조각 같은 두 엉덩이처럼 빛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2년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 <입체기하학>을 최초로 시청하는 행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은 몇몇 관객들 역시 <사랑의 기하학>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한 이 놀라운 단편을 발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간혹 희귀하게 발견되는 DVD를 구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관람의 통로다. 애석하게도 몇 년 전까지 DVD를 판매하던 영화의 홈페이지(http://www.solidgeometry.net)는 현재 문을 닫아버렸고, 사이트 주소를 아무리 다시 쳐봐도 순결한 백색의 화면만이 반복될 뿐이다. 혹시 <입체기하학>의 홈페이지 운영자는 마침내 홈페이지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일까. 그렇다면야, 이건 정말 인터넷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홈페이지의 퇴장법이 아닐까.

<매거진T>에 썼던 글
by Damon | 2013/11/18 21:03 | 영화 | 트랙백 | 덧글(0)
스윗 포틴 블루스
(사진에서는 토끼옷을 입고 있지만, 난 곧 뒤에 있는 저 텔레토비 옷을 입게 된다.....)

1998년 가을,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더니 100kg에 육박하는 중년 아저씨 둘이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겼다. 1년간 머물 홈스테이 가정의 주인들이었다. “캐나다에 온 것을 환영해! 그런데 넌 참 남자치고 짐이 많구나.” 그들은 홈스테이에 묵고 있는 대여섯의 동양인 어학연수생들을 종종 거실로 불러 모아 “우리 함께 음악을 들어 보아요”라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틀었다. 그걸 따라 부를 수 있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완벽한, 맞춤형 홈스테이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할로윈 밤에 그들이 거실에 펼쳐놓은 코스튬을 보며, 나는 이 귀여운 중년 게이 커플의 취향에 탄식했다. 그들이 준비한 의상은 카우보이, 선원, 비버, 토끼, 마녀 등이었다. 뭣 하나 게이적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그걸 좋아하는 것과 직접 입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안 입을래요.” 그러자 홈스테이 주인들은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침울하게 소파에 앉아 선원 코스튬을 만지작거렸다(아마 그걸 나에게 입히고 싶었으리라). 인형 옷만 구하고 인형은 사지 못한 소녀들 같은 두 남자를 위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남은 걸로 아무거나”라고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스튬은 노란색 텔레토비였다. 밴쿠버 교외 동네의 할로윈은 섹시한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시내의 할로윈과는 달랐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들이 사탕 바구니를 목에 걸고 다녔다. 나는 노란색 텔레토비 옷을 입은 채 홈스테이 주인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집으로 가서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외쳤다. 시체처럼 생기고 시체처럼 말하고 시체처럼 걷는 할머니가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나와 내 볼을 꼬집었다. “아이고. 우리 애기는 몇 짤?” 나는 차마 스물넷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에게 사탕을 주기 위해 거실에서 문까지 5분에 걸쳐 걸어 나온 그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할로윈을 지켜주고 싶었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엠 포틴….” 그 순간 하늘에서 내 마음속 열 살짜리 꼬맹이가 환하게 웃었다. 아이 좋아.

웹진 IZE에 쓴 글
by Damon | 2013/11/18 20:50 | 트랙백 | 덧글(0)
Q&A: Fashion Magazine for Dummies
2013년 8월. <오보이!>에 쓴 글.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패션잡지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10여년을 영화 잡지 기자로 일하다가 패션 잡지로 옮겼다. 그리고 1년을 버텼다. 기묘한 패션 잡지의 세계 속에서 터득한 몇 가지 것들에 대한 자문자답.

지금 뭘 하고 계신가요? 마감 중입니다. 패션 잡지 기자에게는 가장 거대한 고난이라고 할 셉템버 이슈를 만드는 중이거든요. 앞으로 마감이 3일 정도 남았고요, 지금 시간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열심히 클럽에서 발을 구르고 있을 광복절 새벽입니다.

원래 이 글은 일주일 전에 <오보이!>에 넘기셔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글이 안풀린 이유는 단 하나에요. 김현성 포토그래퍼는 이렇게 주문했었죠. “도훈씨. 이 책을 보는 친구들이 패션 잡지에 대한 근사한 선망을 가질 수 있는 글을 써줘요”. 네.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고민하다보니 결국 제가 만드는 잡지의 마감 기간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마감 기간의 에디터란 정신분열증적으로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로서, 하루에도 골백번씩 “이 놈의 패션 잡지 때려치워야지!”라는 말을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니 제가 왜 이 글을 지금에야 급하게 쓰고 있는지 짐작 하시겠지요?

그렇군요. 그럼 이 인터뷰를 쓰시기 전에 뭘 쓰셨나요? 미쓰에이의 수지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마감을 했습니다. 그걸로 이번달 마감은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편집장이 최종 마감 하루를 남겨놓고 이렇게 주문하더군요. “도훈씨. 마감도 끝났으면 마감 하나 더해줘요. 어깨에 재킷 걸치는 남자애들을 까는 패션 기사가 필요해요. 패셔너블하면서도 웃기게. 내일까지면 충분하죠?”. 제 마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충분하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피처 에디터라고요. 패션 기사를 맡기시면 어떡해요”. 그러나 제 입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예스 셰프……”

피쳐 에디터라니, 그건 패션 에디터와는 다른 건가요? 네. 한국 패션잡지는 흔히 두 팀으로 나뉩니다. 패션 관련 기사와 패션 화보를 담당하는 패션팀, 그리고 나머지 에디토리얼을 담당하는 피쳐팀입니다.

그럼 패션이든 피쳐든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려면 뭘 공부해야 하나요? 저도 잘 몰라서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봤습니다. “패션 잡지 에디터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거나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야 합니다”라는 대답이 있더군요. 저거 분명히 국문학과와 영문학과 출신 에디터가 썼을 겁니다. 제가 아는 패션 잡지 에디터들의 학과를 알려 드리면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사법학과, 독문과, 철학과, 심리학과…..저는 무슨 학과 출신이냐고요? 행정학과입니다. 제가 대학 4년간 배운 것은 오로지 ‘어떻게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평생을 복지부동하며 일 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니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는데 꼭 대학 학과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에디터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이 있겠죠? 결국 중요한 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걸 지면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각적인 감각, 그리고 글 솜씨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패션 에디터들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대한 감각과 호기심이 크게 자리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종종 패션 잡지를 보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에디터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빈티지 로렉스 시계를…” 혹은 “에디터는 할머니의 오랜 장롱 속에서 발견한 샤넬 수트를 발견하고 기쁨의 환호를….”. 네. 물론 그런 에디터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패션을 공기처럼 접한 사람들이 패션 에디터 역할을 잘 해내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실 시계라고 해봐야 팔면 20만원이나 받을까 말까 한 싸구려 세이코 밖에 없고, 할머니 장롱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50년 된 빈티지 몸빼 밖에 없대도 걱정 마세요. 이를 테면 편집장님은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본인 말에 따르면) “똘똘한 아이들은 치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이었답니다. 그런데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패션 화보 촬영 현장의 재미를 맛보면서 남들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 할 때 패션 잡지를 펼치고 패션용어사전을 외웠답니다. 그러니 패션 에디터가 되고 싶다면 패션용어사전을 들고 도서관으로 뛰어가세요. 날 때부터 패션을 습득한 친구들을 따라잡고 싶다면 역시, 공부가 최곱니다(결론이 이상해도, 어쩌겠어요. 원래 공부 잘하는 놈 따라잡을 놈 없습니다).

그나저나 에디터님은 영화 잡지 출신이라더니요. 왜 패션 잡지에서 일하시는 건가요? 솔직히 말해 볼까요. 제가 영화 잡지를 그만두고 패션 잡지로 옮긴다고 이야기했을 때, 꽤 진중한 척 하던 어떤 기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아. 패션지…”라며 입 꼬리를 치켜 올렸죠. 자, 그 말과 표정에는 패션 잡지에 대한 많은 비 패션 잡지 언론인들의 어떤 편견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잡지 시절에도 제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은 제가 쓰는 글과 비주얼을 온전히 통제하는 페이지를 만드는 거였습니다. 아마도 그걸 거에요. 패션 잡지에 일하는 즐거움이란, 자기가 책임지는 페이지의 비주얼과 글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빚어내는 일에서 나옵니다. 이건 마치 영화를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 일이에요.

에이.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니, 영화 잡지 출신 패션 잡지 에디터 허세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짜고 촬영을 하고 사운드를 붙이고 후반 작업을 해서 원하는 시퀀스를 만들어 내는 것과 잡지의 페이지를 온전히 완성해 내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뭐, 문제는 에디터로서 제 위치가 언제쯤 스필버그나 큐브릭의 위치에 오를 것이냐인데, 평생 못 오르면 어때요. B급 영화를 만드는 일도 블록버스터나 아트하우스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재미있을 수 있잖아요.

패션 잡지 기자가 됐다는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얼마 전엔 표지 화보를 진행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했죠. “실장님. 이번 화보 컨셉은 내추럴이에요. 지나치게 세팅한 헤어는 곤란하고요,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헤어로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나탈리아 보다이노바 화보를 시안으로 보내드렸잖아요. 그 사진처럼 아침에 갓 일어난 것처럼 헝클어져 있지만 패셔너블하게 보여야 해요. 프랑스 여자들처럼요”. 이 전화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부서의 피쳐 에디터가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러더군요. “패션 잡지 기자 다 되셨네요 이제. 깔깔깔”.

그런데 말이에요. 패션잡지에서 다루는 그 많은 값 비싸고 아름다운 것들을 저로서는 구입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패션잡지를 계속 사게 된단 말이죠. 대체 저에게 패션잡지가 줄 수 있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시인 김수영이 1967년에 발표한 시 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도 아냐 唯物論(유물론)도 아냐 羨望(선망)조차도 아냐. 羨望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羨望도 아냐.’ 아아. 오랜만에 인용해도 가슴이 싸 해지는, 근사한 시 아닙니까? 기실 패션 잡지에서 다루는 그 많은 값비싸고 아름다운 것들을 저 역시도 살 수 없습니다. 발렌시아가의 새로 나온 가죽 재킷을 사려면 저 역시 한달 월급을 통째로 밀어넣어야 합니다. 어디 패션만 그런가요? 저는 수십억짜리 요트의 아름다움을 글로 기똥차게 묘사하지만 실재로는 그런 요트 타 본적도 없고 가질 수도 없을겁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루부르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기고, 그러면서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내는 거죠. 패션 잡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잡지에 나온 모든 것을 구입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패션 잡지의 역할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모조리 모아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독자들은 그걸 통해 어떤 자신 만의 미적인 감식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거죠. 뭐, 그러다가 카드빚 내서 하나쯤 구입하는 걸 말릴 이유는 저에게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패션 잡지 에디터들 돈 많이 벌지 않아요? 다들 좋은 백, 좋은 옷만 입던데. 업계의 비밀이니 밝힐 수 없습니다만, 흠. 사실은 박봉입니다. 좋은 백과 옷을 에디터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는 이유는 ‘프레스 세일’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다들 통장 잔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덕이 아닐까 싶군요.

안나 윈투어는 부자던데요? 만약 당신이 패션 잡지 에디터로서 톱에 오른 다음, 심지어 미국 <보그> 본사의 편집장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면, 아마도 당신은 연봉으로 200만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안나 윈투어의 연봉이 200만달러거든요. 물론 윈투어에게 무료로 지급되는 의상비와 호텔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패션 잡지는 사실상 패션계에 기생하는 존재 아닌가요? 너무 패션 잡지의 힘이 강력해 져서 패션계가 역으로 지나치게 굽신굽신하는 거 같던데. 에이. 그럴 리가요. 패션 잡지는 패션계 없이 존재 가치가 소멸하는 매체인 걸요. 다만, 패션 잡지의 출현이 패션 산업 자체를 새롭게 창조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선재·고영림의 <패션사진, 문화와 욕망을 읽는다>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유행이란 전염성 있는 사회적 동조 현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패션은 산업혁명 뒤 잡지의 대중화와 함께 출발한 것이다.”. 맞습니다. <보그>가 1892년에 창간하기 전까지, 패션은 그냥 패션이었을 따름입니다. 패션 잡지가 등장하고, 현실 세계에 떠도는 어떤 패션의 유행을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하면서 진정한 ‘패션의 시대’가 시작된 거겠죠. 그건 영화 잡지와도 비슷합니다. 이를테면 5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감독이 등장했을 때, 당대의 영화 잡지들이 비슷한 경향을 가진 젊은 감독들을 분류하고 모아서 ‘누벨바그’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았더라면? 세상에는 ‘누벨바그’라는 영화사적 운동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김춘수의 시 아시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패션 잡지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옷차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패션 잡지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 거겠죠.

저는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은데, 이걸 읽다 보니 정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옆자리에 앉아서 올 가을 시즌 유행할 아이템에 대한 기사를 밤새도록 쓰고 있는 에디터에게 해 줬더니 이런 말이 돌아오네요. “선배. 다 됐고요, 배고픈데 순대국밥 사주세요”

꺅. 패션 잡지 에디터가 순대국밥을 먹어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패션 잡지 에디터는 순대국밥을 먹습니다. 프라다를 먹을 순 없으니까요.
by Damon | 2013/11/18 20:40 | 패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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