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시몬스
그렇다. 나는 패션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리고 각별히 아끼는 옷이 몇 벌 있다. 영원히 누군가에게 팔거나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갖고 가야할 옷 말이다. 그 중에서도 아끼는 건 베를린 빈티지 샾에서 구입한 라프 시몬스 2002-2003 컬렉션의 '버니지아 크리퍼스' 빈티지 후디다. 이 옷을 빈티지 샾에서 입어보자마자 주인이 "이건 니꺼야. 니꺼"라고 외쳤고, 나도 그렇게 외쳤다. 십수년이 된 옷이니만큼 꽤 낡았는데 그 낡은 맛이 정말이지 근사하다. 물론 이걸 입고 나가면 다들 '이랜드에서 샀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 반응도 썩 괜찮다. 이베이 등에 간혹 올라오면 2백만원에 가까운 가격에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낡은 이랜드 같다는 사실은 나도 부인할 수 없긴 하다만. 그래도 라프 시몬스니까. 그의 가장 호들갑스럽게 근사한 시절 옷이니까. 여전히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by Damon | 2019/01/26 23:55 | 패션 | 트랙백 | 덧글(0)
2019 벼룩시장
옷이 넘치고 넘쳐나는 관계로, 디자이너 레이블 중심으로 오랜만에 벼룩을 합니다. 구매하실 분들은 댓글로 '0번 구매원합니다'라고 달아주세요. 그러면 제가 '낙점됐습니다. 성함, 핸드폰번호, 주소를 남겨주세요'라고 댓글을 달겠습니다. 그러면 '비밀 댓글'로 성함, 핸드폰번호, 주소를 남겨주신 뒤 하나은행 555-910012-90107로 배송비 3천원과 함께 바로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입금이 확인되면 다음 주중 빠르게 배송해드리겠습니다. 모든 제품을 세탁해서 보내드릴 수는 없지만 스타일러에 한번 돌린 다음 보내드립니다. 

*대부분의 옷은 사이즈 남성 xs~s, 90~95 정도입니다.

1.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SOE의 레더 재킷입니다. 광택이 꽤 있는 재질의 레더고, 빨간색 안감이 포인트를 줍니다. 사이즈는 남자 90~95 정도이고, 여성분이 입어도 핏이 매우 괜찮을 겁니다. 구매 가격은 거의 백만원에 육박했습니다. 판매 가격은 29만원입니다.  



2. 몽클레르의 패딩 재킷입니다. 드문 0사이즈, XS 사이즈입니다. 가장 단순한 디자인이라 겨울에 무엇이든 매치해서 입을 수 있습니다. 남성 90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성분들이 입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매 가격은 역시 백만원 정도였습니다. 판매 가격은 29만원입니다.


3. 꼼데가르송 준야 와타나베의 하늘색 8부 셔츠입니다. 부드러운 재질의 면입니다. 여름에 입으면 근사할 것 같습니다. 사이즈는 스몰. 남자 사이즈로 90~95 정도입니다. 판매 가격은 3만원입니다. 

4. 스웨덴 브랜드 아크네의 반팔 티셔츠입니다. 재질이 두껍고 뻣뻣하며 특이하게도 래글런 스타일로 제작된 옷입니다. 사이즈는 스몰. 95 입으시는 분이 넉넉하게 입을 수 있습니다. 판매 가격은 5만원입니다.

5.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앤 할리우드의 재킷입니다. 남자 사이즈로는 90입니다. 여성분들이 약간 넉넉하게 입으시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판매 가격은 7만원입니다. 

6.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감색 재킷입니다. 사이즈는 90 정도. 여성분들에게도 핏하게 잘 맞을 겁니다. 판매 가격은 1만원입니다.

7. 와코 마리아의 자수 밀리터리 재킷입니다. 가격이 거의 백만원에 육박하는 와코 마리아의 시그니쳐 아이템이죠. 판매가격은 9만원입니다. 

8. 아끼던 비즈빔의 노라기 재킷입니다. 여름에 입으면 이 옷처럼 근사한 옷은 드물죠. 전 한 벌 더 있는데다가,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라 이 재킷의 가치를 잘 아시는 분이 예쁘게 입어주시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겁니다. 사이즈는 1. 남자 90 사이즈 정도입니다. 판매 가격은 29만원입니다.

9. 프랑스 디자이너 레이블 까르벵의 파란색 씨어서커 재킷입니다. 초여름이나 가을에 입으면 이토록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여름용 재킷으로도 딱이고요. 사이즈는 46, 남성 95~100 정도입니다. 판매 가격은 12만원입니다.

10.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kolor의 봄/가을용 하프 코트입니다. 소매와 밑단 등이 거칠게 뜯겨져 있는 듯한 디자인입니다. 사이즈는 남성 95~100 정도입니다. 판매가격은 15만원입니다. 

11.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브라운색 셔츠입니다. 말할 필요가 없이 아름답게 몸을 감싸주는 셔츠입니다. 사이즈는 90~95 정도. 판매 가격은 9만원입니다.

12. 꼼데가르송의 셔츠입니다. 이 브랜드의 시그니쳐 줄무늬에 아랫단은 다른 재질이 도킹되어 있는 디자인입니다. 스몰 사이즈. 판매 가격은 7만원 입니다. 

13.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 YMC의 바다 크리쳐 스웻셔츠입니다. 구매하고는 단 한 번 입은 제품입니다. 스몰 사이즈. 판매 가격은 5만원입니다.

14. 아마도 저에게 가장 많은 브랜드일 아크네 스튜디오의 주황색 스웻셔츠입니다. 사이즈는 스몰. 가격은 6만원입니다.

15.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메종 키츠네의 스웻셔츠입니다. 사이즈는 90~95 정도입니다. 어깨는 풍성하고 밑단은 짧은 디자인이라 여성 분에게 더 강력하게 권합니다. 가격은 3만원입니다.

16. 아크네 스튜디오의 블랙 스웻셔츠입니다. 스마일 마크가 매우 귀엽습니다. 사이즈는 스몰. 가격은 7만원입니다.

17. 스웨덴 레이블 아워 레가시의 스마일 스웻셔츠입니다. 제가 입기에는 지나치게(?) 귀여워서 판매합니다. 사이즈는 46. 남성 사이즈로는 95 정도지만 여성분들이 약간 오버 사이즈로 입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판매가격은 2만원입니다.

18. 새옷이나 마찬가지(집에서 시착만 해봤습니다)인 챔피언스의 스웻셔츠입니다. 사이즈는 스몰. 90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격은 2만원입니다.


                   19. 메종 키츠네의 여우가 자수로 놓여진 검은 스웨터입니다. 정말 부드럽고 아늑합니다. 구입하고는 몇 번 입지 않은 제품입니다. 사이즈는 스몰. 가격은 15만원입니다. 

20. 메종 키츠네의 프랑스 여우 자수가 놓여진 후드 스웻셔츠입니다. 사이즈는 스몰. 가격은 12만원입니다.

21. 좋아하는 일본 브랜드 앤 할리우드의 체크 셔츠입니다. 사이즈는 남성 90~95 정도입니다. 가격은 2만원. 

22. 일본 브랜드 와코 마리아의 자수 셔츠입니다. 한때는 이것만 줄창 입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프린트나 자수가 있는 셔츠에 영 끌리질 않아서 내놓습니다. 사이즈는 95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판매 가격은 5만원입니다.

23. 일본 브랜드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염소 가죽 재킷입니다. 꽤 오래 입었던 재킷이지만 사이즈가 더는 맞지 않아(으흑). xs 사이즈, 남성 90 정도입니다. 여성분에게도 잘 맞을 겁니다. 가격은 4만원입니다.
 
24. 이탈리아 브랜드 디파트먼트5의 M65 재킷입니다. 이건 구매하고는 단 한 번 입었습니다. 꽤 고가의 재킷이지만 사이즈가 저에게는 맞지 않아 내놓습니다. 가격은 15만원입니다.

25. 잘 아시는 이탈리아 브랜드 아스페시의 패딩 재킷입니다. 이 재킷은 출근용으로도 매우 근사하지요. 사이즈는 스몰. 남자 사이즈로 90~95 정도입니다. 판매 가격은 19만원입니다. 판매완료

26. 일본 브랜드 앤 할리우드의 카키색 트렌치 코트입니다. 낙낙하게 떨어지는 핏이 일품입니다. 판매가격은 12만원입니다.

27. 으흑. 결국 가장 아끼던 셔츠까지 내놓습니다. 톰 브라운의 옅은 브라운 셔츠입니다. 천이 단단하게 각이 잡히는 덕에 90사이즈의 남성 분이나 여성분에게 매우 잘 어울릴 겁니다. 만듦새가 끝내주는 셔츠입니다. 판매 가격은 15만원입니다.

28. 한때 제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 '팀 해밀턴'의 셔츠입니다. 이건 소장용으로라도 갖고 있어야지....하다가 그냥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이즈는 스몰. 남성 90 사이즈 혹은 남성 44사이즈를 입는 여성분에게 좋습니다. 판매 가격은 7만원입니다.

29. 꼼데가르송 옴므의 페인트 반팔 셔츠입니다. 종종 화보 찍을 때 입곤 했던 옷인데 다른 주인을 찾아가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것 같습니다. 판매 가격은 6만원입니다. 

30. 꼼데가르송의 머플러입니다. 사이즈가 매우 큽니다. 두가지 다른 재질이 도킹되어 있는게 매우 근사합니다. 40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몇 번 두르지 않는 제품입니다. 판매 가격은 12만원입니다.

31. 생로랑의 반팔 블랙 스웻셔츠입니다. 물론 에디 슬리먼 시절에 나온 제품이지요. 생 로랑 특유의 멋이 있습니다. 사이즈가 꽤 작습니다. 남성 90, 혹은 오히려 여성분들에게 더 권하고 싶습니다. 판매 가격은 15만원입니다.

32. 덴마크 디자이너 브랜드 헨릭 빕스코브의 귀여운 털방울 모자입니다. 제가 쓰기에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앙증맞아서.....택이 달려 있는 신제품입니다. 판매 가격은 4만원입니다. 

33. 와코 마리아의 피쉬테일 밀리터리 코트입니다. 판매가격은 당연히 100만원이 훌쩍 뛰어넘는, 거의 새 제품입니다. 사이즈는 남성 95 정도. 여성분이 오버사이즈로 입으면 정말 예쁠 것도 같습니다. 판매가격은 29만원입니다.

34. 꼼데가르송의 트위드 재킷. 겨울용으로 아주 끝내주는 재킷입니다. 거친 트위드도 재질도 꽤 멋이 있고요. 검은색이 아니라 진한 청보라색 정도 됩니다. 세일할 때 80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이즈는 스몰. 판매가격은 19만원입니다.


by Damon | 2019/01/17 18:35 | 패션 | 트랙백 | 덧글(96)
이안 매큐언과 맥그리거의 <입체기하학>
이언 매큐언 원작의 TV영화 <입체기하학>

영국작가 이언 매큐언(혹은 이안 맥완)의 글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현대인이라는 동물들의 끝없는 강박과 광기에 대한 조롱 섞인 통찰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의 신드롬>을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인 조는 교외 벌판에서 우연히 제드 패리라는 청년을 만난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당신의 눈빛에서 사랑을 발견했다”며 조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치명적인 애착이 불러일으킨 동성애적 광증? 어림도 없다. 제드 패리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을 위한 집착이다. 제드는 자동 응답기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남기고, 조를 미행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살인을 청부하기까지 한다. 이언 매큐언은 결국 집착이라는 인간의 뒤틀린 본성이 거의 종교적인 광신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산하게 말한다.

이언 매큐언은 괴물 같은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 개개인의 인간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공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다른 대표작 <시멘트 정원>의 주인공은 부모가 죽은 뒤 시멘트 정원이 있는 저택에 남겨진 네 명의 남매들이다.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 이 아이들은 근친상간적 욕망과 동물적인 야심으로 창조된 끔찍하도록 슬픈 피조물들이다. <암스테르담>은 또 어떻고. 맥큐언은 주인공 중 한 명의 변태적인 포르노 사진을 중심으로 무너지는 남자 친구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휘몰아간다. 남자라는 동물들의 썩어빠진 질투와 경쟁을 낄낄거리는 듯한 어투로 조롱해대는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이언 매큐언의 악몽 같은 세계를 여러 번 거닌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이 거대한 스크린에 투영되는 날을 꽤나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작품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노라면 독자들의 영화적 욕망이 갑자기 현실화되는 사건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터. 맥큐언의 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들 만한 용기를 가진 감독이라면 폴 버호벤 정도가 유일하지만 이 도발적인 네덜란드 영감은 할리우드에서 쫓겨나 고향 유배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다. 하지만 맥큐언 팬들의 애석함을 달래줄 괴작이 하나 존재한다. 이완 맥그리거와 그의 삼촌인 다니엘 로슨 감독이 2002년에 제작하고 ‘채널4’를 통해 방영한 30분짜리 단편영화 <입체기하학(Solid Geometry)>이 바로 그 유일무이한 괴작이다.

단편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First Love Last Rites)>의 한 작품을 영화화한 <입체기하학>은 TV에서 방영된 것이 놀라울 정도로 기묘한 예술품이다. 필(이완 맥그리거)과 메이지(루스 밀러)는 스코틀랜드의 도시 에딘버러에 사는 커플이다. 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새롭게 편집하는 것을 조건으로 유산 2만5,000파운드를 상속받을 수 있다는 편지를 받는다. 증조할아버지의 일기에는 다른 차원으로 통할 수 있는 불가해한 기하학 도형의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기장을 편집하던 필은 거의 광적으로 기하학 도형을 완성하는 데 집착하기 시작하고, 설명할 수 없는 집착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마저 갈가리 찢어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를 이용해 연꽃 모양의 기하학 도형을 완성시킨 필은 그것을 아내인 메이지에게 실험해본다. 실험은 성공했는가? <입체기하학>은 아무런 해답도 없다. 시청자들은 <환상특급>의 잘 만들어진 단편이 남길 만한 스산하고 괴이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브라운관 밖으로 내던져질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이언 매큐언이 원했음직한 반응이 아닐까. 미묘함을 더욱 돋우는 것은 광기에 싸인 젊은 여피 역을 (옷도 훌렁훌렁 벗어던지며) 세상에서 가장 잘해낼 유일한 배우인 이완 맥그리거의 섬세한 연기다. 30분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그의 매력은 조각 같은 두 엉덩이처럼 빛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2년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 <입체기하학>을 최초로 시청하는 행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은 몇몇 관객들 역시 <사랑의 기하학>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한 이 놀라운 단편을 발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간혹 희귀하게 발견되는 DVD를 구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관람의 통로다. 애석하게도 몇 년 전까지 DVD를 판매하던 영화의 홈페이지(http://www.solidgeometry.net)는 현재 문을 닫아버렸고, 사이트 주소를 아무리 다시 쳐봐도 순결한 백색의 화면만이 반복될 뿐이다. 혹시 <입체기하학>의 홈페이지 운영자는 마침내 홈페이지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일까. 그렇다면야, 이건 정말 인터넷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홈페이지의 퇴장법이 아닐까.

<매거진T>에 썼던 글
by Damon | 2013/11/18 21:03 | 영화 | 트랙백 | 덧글(0)
스윗 포틴 블루스
(사진에서는 토끼옷을 입고 있지만, 난 곧 뒤에 있는 저 텔레토비 옷을 입게 된다.....)

1998년 가을,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더니 100kg에 육박하는 중년 아저씨 둘이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겼다. 1년간 머물 홈스테이 가정의 주인들이었다. “캐나다에 온 것을 환영해! 그런데 넌 참 남자치고 짐이 많구나.” 그들은 홈스테이에 묵고 있는 대여섯의 동양인 어학연수생들을 종종 거실로 불러 모아 “우리 함께 음악을 들어 보아요”라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틀었다. 그걸 따라 부를 수 있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완벽한, 맞춤형 홈스테이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할로윈 밤에 그들이 거실에 펼쳐놓은 코스튬을 보며, 나는 이 귀여운 중년 게이 커플의 취향에 탄식했다. 그들이 준비한 의상은 카우보이, 선원, 비버, 토끼, 마녀 등이었다. 뭣 하나 게이적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그걸 좋아하는 것과 직접 입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안 입을래요.” 그러자 홈스테이 주인들은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침울하게 소파에 앉아 선원 코스튬을 만지작거렸다(아마 그걸 나에게 입히고 싶었으리라). 인형 옷만 구하고 인형은 사지 못한 소녀들 같은 두 남자를 위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남은 걸로 아무거나”라고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스튬은 노란색 텔레토비였다. 밴쿠버 교외 동네의 할로윈은 섹시한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시내의 할로윈과는 달랐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들이 사탕 바구니를 목에 걸고 다녔다. 나는 노란색 텔레토비 옷을 입은 채 홈스테이 주인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집으로 가서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외쳤다. 시체처럼 생기고 시체처럼 말하고 시체처럼 걷는 할머니가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나와 내 볼을 꼬집었다. “아이고. 우리 애기는 몇 짤?” 나는 차마 스물넷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열 살 남짓한 꼬맹이에게 사탕을 주기 위해 거실에서 문까지 5분에 걸쳐 걸어 나온 그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할로윈을 지켜주고 싶었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엠 포틴….” 그 순간 하늘에서 내 마음속 열 살짜리 꼬맹이가 환하게 웃었다. 아이 좋아.

웹진 IZE에 쓴 글
by Damon | 2013/11/18 20:5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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